[책 소개]
책 <믿음에 대하여>는 어느새 사회 초년생이 된 이들이 직장에서 분투하는 눈물겨운 모습을, 그리고 삶의 동반자와 안정적인 관계 지속을 꿈꾸는 삼십대 생활상을 보여준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거두어야 하는, 일과 사랑을 모두 손에 쥐고 싶지만 그중 하나도 제대로 이루기 어려운 삼십대의 고충을 특유의 생생한 입담으로 전하는 이번 작품은 박상영 '사랑3부작'의 최종장이자 새로운 페이즈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네 편의 수록작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유례없이 세상을 휩쓸었던 2021년과 2022년에 쓰였다. 팬데믹 속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로 인한 고립감, 그 안에서 더욱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이야기 속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사회의 병폐를 직시하는 시선이 한층 날카롭게 그려진 <믿음에 대하여>는 박상영 스스로가 살고있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본문 중]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
나는 몸을 살짝 일으켜 맞은편에 앉은 배서정에게 물었다.
-선배님, 무슨일이세요?
배서정은 자신의 핸드폰을 톡톡 치며 지금이 몇시인지 보라고 했다. 시간은 네시.
-너 해야 할 일 있지않니? 매번 빼먹는 그거.
설마...트위터? 내가 일부러 빼먹은 것도 아니고, 그럼 인터뷰 하는 도중에 핸드폰을 켜고 트위터를 하라는 말이야?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렬히. 나는 메신저 창을 열고 배서정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선배님 오늘 인터뷰가 길어져서, 인터뷰 도중에 폰을 만지는건 실례인 거 같아서 트위터 업로드를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 오늘따라 말이 길다? 내가 오늘 일만 갖고 그러겠니? 넌 언제나 이런식이잖아. 하는 일이 뭐 얼마나 된다고. 그거하나 똑바로 못하니. 내가 팔만대장경을 필사하라고 했니? 아니면 하루에 열번씩 기사를 올리라고 했니? 트위터 관리 똑바로 하라는 게 그렇게 어렵니? 인터뷰 기사 하나 맡으니까 이제 니가 아주 대단한 기자라도 된 것 같니? 그래서 트위터는 하찮게 느껴지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조증 걸린 애처럼 실실 웃을 줄이나 알지, 똑바로 하는 일이 있긴 하니?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키보드로 한참 동안 뭔가를 치다가 다 지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서정에게 말했다.
-선배님, 사무실 밖으로 좀 나와주시겠어요?
(...중략)
마지막 출근 날, 편집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배서정이 편집장에게 제출했던 내 평가서를 읽어주었다.
-트렌드를 읽는 감각과 문장의 기본기가 있음. 기복이 심한 성격만 잘 눌러주면 좋은 인력이 될 자질이 있음.
편집장은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생각이었으나 그날의 소동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전부인데, 그런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들어오면 되겠냐.
나는 빙긋 웃으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 돌아와 빈 박스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배서정은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마디 했다.
-너, 그동안 내가 아무 칭찬도 하지 않아서 화가 났던거니?
-아니요. 그것 때문은 아니었는데...
-이번 인터뷰 기사 잘 썼더라. 소설가 K
돌아서는 나를 향해 배서정이 짧게 말했다.
-나, 너 안 싫어해.
나는 묵직한 박스를 든 채 그 풍경으로부터 멀어졌다. 안간힘을 다해 앞만 보고 걸었다.
[읽고]
본문의 내용을 앞부분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 박상영의 이야기는 쌓고 쌓는 벽돌같은 이야기라 중간 발췌를 하는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마치,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다!!!" 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알려지지않은 예술가와 자이툰 파스타>도 그렇고, <대도시의 사랑법>도 그러했다. 사랑 3부작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같은 형식의 글쓰기를 했는지도. 박상영의 글은 쉽고, 내 친구의 넋두리를 듣는것 같다. 같은 시대, 같은 세대를 함께 걷는 이유일테지.
사랑에 대한 믿음. 우정에 대한 믿음. 가족에 대한 믿음. 마음을 바치면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적어도 나를 조금은 이해해줄 사람이 이 있을 거라는 믿음. 우리는 믿음의 이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믿음을 상대방에게 맡겨버림으로써 스스로 좌절하고 좌초되고 상처받는다. 그걸 다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믿음을 가지게 될까.
친절해 보이고 싶지 않아 눈가를 빨갛게 칠하고 나는 말하고 싶다. "믿음은 종교에서나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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