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책 소개]
한국 시단에 있어 허수경 시인이 차지한 그 자리가 어떠한지 잠시 생각해본다. 시인만의 고유한 울림이 있는 자리다. 시인만의 고유한 언어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자리다. 시인은 여자가 아닌 여성의 목소리로, 목청껏 지르고 싶었으나 도저히 삼킬 수밖에 없었던 세상사의 많은 슬픔과 비애들을 다양한 음역을 가진 시로 표출을 해주곤 했다. 시인 스스로 일찌감치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라고. 이번 시집에는 총 54편의 시가 실렸다. 고고학적인 세계와 국제적 시야를 바탕으로 그사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사유는 더욱 깊고 더욱 넓어졌으며 더욱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의 대상은 우리가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쉽고 단순하며 가벼운 것이 아니다. 무한이다. 우주이며 역사다. 사랑이다. 당신이며 너다. 시를 다 읽고 났을 때 내가 읽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다시금 책장을 넘기게 되는 힘, 삶을 다 살고 났을 때 내가 살아낸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다시금 삶을 반추하게 하는 힘, 이 시집은 우리에게 마침표를 찍어주는 게 아니라 물음표를 던진다. 물론 홀로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 함께 고심하게 만든다. 부드러운 이 완력을 따라가다 보면 안팎으로 세상의 온갖 자잘한 떨림과 함께 흔들리는 시인과 만난다. 그렇게 비틀, 하는 순간의 균열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온 말들을 좇는 시인과 만난다. 시인은 몸이 가는 대로 시를 섬긴다. 그러다 보니 한 줄의 넋두리로 완성되는 시가 있었고, 어떤 시들은 희곡이나 에세이처럼 다른 장르의 옷을 입어야 숨을 쉬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시들은 그 자체로 노래였다.
“수다스러워졌달까요. 이번 시집엔 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글도 있고, 희곡 형식을 빌려 쓴 시도 있어요. 장르 통합의 욕심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노래의 형식으로 풀 수 있는 주제가 있는 반면, 산문시의 형태를 빌려야만 풀어낼 수 있는 주제도 있는 것이죠. 시는 마땅히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2010년 10월 1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중에서
[시인의 말]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읻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옛 노래들은 뜨겁고 옛 노래들은 비장하고 옛 노래들은 서러워서 냉소적인 모든 세계의 시간을 자연신의 만신전 앞으로 데리고 갈 것 같기에, 좋은 노래는 옛 노래의 영혼이라는 혀를 가지고 있을 것 같기에, 새로 시작된 세기 속에 한사코 떠오르는 얼음벽, 그 앞에 서서 옛적처럼 목이 쉬어가면서도 임을 부르는 곡을 해야겠다 싶었기에, 시경의 시간 속에서 울었던 옛 가수들을 위하여 잘 익어 서러운 술을 올리고 싶었기에.
-2010년 겨울, 허수경
[본문 중]
62p. <카라쿨양의 에세이> 중
...(중략) 이밤, 나 혼자 깨어있다. 다들 잠이 들었다. 오늘,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들 지쳤다. 나 역시 지쳤다. 하나 생각 많은 날이면 피곤은 말미잘의 몸을 하고 신경에 가서 오그리고 붙는다. 이 피곤은 나를 불면으로 이끌 것이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 육체의 어머니.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내가 태어나던 그날로 끊어졌으므로 나는 어머니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내가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여인은 인간의 여자였다.
그녀는 제 젖꼭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던 불우한 인간의 어미였다. 오늘 내 육체의 어머니를 내가 떠올리는 이유는 아이를 낳기 전에 도살을 당한 어떤 양 때문이다. 내 벗이기도 했던 그녀의 죽음이 나를 어머니 생각으로 들게 한 것이다.
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 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 그녀는 올겨울에 제일 처음으로 도살당한 양이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수태 일이 임박해오는 암양들은 이 집을 나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녀의 뼈와 살, 마늘을 많이 넣고 끓인 국 냄새를 맡을지도 모르겠다. ...(중략)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젖어 있었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목은 언제나 아팠지'
잘 쓴 절망의 글들. 자연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죄의 연속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글. 그녀의 글을 마주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인간의 탈을 쓴 나의 얼굴을 괜스레 부벼본다. 수치. 내가 인간임에 느껴지는 혐오. 그러한들 어쩔 것인가. 나는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 것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하고 싶냐 물어도 난 대답할 수 없는 걸. 그 절망 적인 글 안에서도, 시인은 이 세계가 멸망의 긴 길을 나설 때, 마지막 연설을 인류에게 했음 한다며 '인류! 사랑해 울지 마!'를 외친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의 수록작 중 <칼라쿨양의 에세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이자 보는 내내 내가 한 인간으로 수치심을 떨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자연에게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 시를 읽는 내내 영화<램>이 떠올라 더 마음이 아팠다. 이 시를 읽고 개인적으로 좋았다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태어난 어린양을 인간이 양육한다. 그 어린양 은 자기를 키워주는 인간을 어미라고 부르고, 친구라고 불렸던 다른 양이 도살당한 날 자신의 육체의 어미를 생각하는 칼라쿨양. 그리고 영화 속의 아따.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었을까. 자신의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키우면서, 그 자식을 낳은 동물의 어미에 대한 마음은 차가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니, 한술 더 떠 그들을 생명체가 아닌 고기와, 가죽으로 그들을 대한다. 인간의 심장은 그야말로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