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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hallomean 2022. 10. 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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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에 꽂아둔 장미가 바싹 말라 꽃부분이 톡 떨어졌다.

[책 소개]

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실은 오해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안다고 믿었던 부분들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서로에게 덧씌운 환영에 가까웠다. 확신보다는 여운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의 곁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게 될까?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를 오래도록 궁금해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서로를 알면서도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무지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우리 얼마나 함께 이 삶을,

 

[작가의 말]

오래된 기억과, 고장 난 감정

그리고 불가피한 마음으로 부터

-2018년 6월, 오수영

 

[본문 중]

<불면의 밤>

1.

잠들지 못한 수많은 밤에 우리는 비슷한 마음을 앓고 있다. 밤에 제대로 들어서지 못한 자들은 알 수 없는 기이한 마음의 움직임을 곁에 둘 수 있다. 밤에 취한 날이면 우리가 버린 마음과 기억은 정처 없이 삶을 헤맨다. 어쩌면 밤은 삶이 거역한 기억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 재생의 시간이다. 결국 우리로부터 흐릿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몰랐던 밤하늘의 구름이 자세히 보니 이렇게나 선명했던 것처럼 말이다.

2.

밤과의 이른 작별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새벽을 만나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날이면 나는 왠지 내 몫의 절반만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만나지 못한 새벽들이 쌓여서 언젠가 삶의 잉여의 시간이 찾아오면 그때 다시 내게 한꺼번에 몰려들 것만 같다. 밤하늘 같은 적막함 속에서 한없이 뒤돌아보고 싶다.

3.

나는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선택한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한 발만 걸쳐두지 말고 부디 좀 더 세심하게 열성을 다하는 걸 바라지만, 정작 내 곁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그러질 못하는 것 같다. 나를 들여다봐주길 바라면서도 상대방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입장을 쉽사리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기적인 내가 이제 어떤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으며, 또 어떤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그것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나 서운함을 주게 될 때면, 그래서 서로의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려 할 때면 나는 나를 견뎌낼 수 없다. 유난히도 자기모순이 극에 달하는 밤이다.

 

[읽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 애인, 직장동료, 지인 등.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서 그들 마음을 차지하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가깝다고 확신하는 상대가 훨씬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내 인생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소속감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소외감이 들거나 비참히 외롭기도 하다. 모두 내게로부터 떠나고, 내게로 오는 과정 속에서 그들과 나는 끊임없이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반복한다. 죽음이라는 필연의 과정인 헤어짐도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거나, 혹은 너무 큰 기대감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실망을 하기도 해서 만나고 헤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머물러 있지 못한다. 언제나 머물러줄 것 같은 이들에겐 소중함이 없고, 언제든 내 손을 벗어날 것 같은 상대에겐 간절해짐을. 우리는 서로를 이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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