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나를 두드리는 말 들

hallomean 2022. 11. 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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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설가 구보의 하루' 스틸컷 중

문득 어떤 말들을 들었을 때, 마음 깊게 울리는 말들이 있다. 

 

최근의 일련의 사건 사고들로 심신이 편치 않고 고단했었다. 젊음의 피가 흩뿌려진 바닥은 그것이 시위든, 오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제도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내 나이가 젊음을 벗어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이니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그 조차 오만임을 안다. 지나친 정류장의 공기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정류장의 공기와는 다름을. 지금 비가 내리고 있는 그 정거장에, 내 시절엔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맑은 정류장이라고 부를 수 없듯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봤다. 모든 게 신기했고, 뭐든 하고 싶었다. 사람이 있는 곳엔 나도 서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도 그걸 좋아했었다. 그 천진난만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취향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의 행동들은 모든 게 다 체험학습이었다.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건 젊음뿐이 아니다. 모든 연령대에 처음은 존재한다. 나이가 들 수록 그 빈도수는 적어지겠지만. 어떤 책에서 그러더라, 사랑도 '애'라 표현하고, 슬픔도 '애'라 표현한다. 슬픔 없는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는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면식 없는 젊은이들의 죽음에 마음이 아픈 건, 내 청춘을 사랑한 내 마음이기도 하다. 부디, 그곳에선 행복하길. 

 

팟캐스트를 들었다. 술을 마시며 시를 읽는 팟캐스트인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술에 취해 느른해진 목소리로 시를 읊으면, 그래 바로 이맛이야. 라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다. 세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시담을 이야기하는데,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는 중에 들었던 회차는 패널 한 명이 온 방송을 이끌어나가는 1인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 터덜 걷는데 그가 말했다. '제 마음에 새겨진 말이 있어요. 7년 전쯤 들었던 말인데, 아직도 제 머리에서 나가지 않아요.'

비관론자는 언제나 낙관론자 보다 현명해 보인다.

나는 어쩌면 지독한 비관론자인데 , 그의 이 말이 뼈를 때렸다. 대책 없이 행복해 보이는 낙관론자들을 속으로 비웃었고, 저래서 되겠나 하며 시종일관 그들의 낙천에 대해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너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부딪혀봐야 아픈 줄 알 거냐,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거냐 라는 식으로. 그렇게 지적하며 그들에 비해 내가 좀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방식은 사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격지심과 용기 없음을 가리는 방편이었다는 것을 나는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사 오며 깨달았다. 그 깨달음에 봉투를 떨어트렸고, 맥주는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낙관론자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보야, 그냥 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그래?라고 깔깔 거리며 웃는 것처럼. 나는 비관론자이지만 대책 없이 마냥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이 없었다. 나를 향해 자신을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강아지의 눈망울과, 내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과 저녁 늦게 시와 함께하는 술 한 모금과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들과 또 일련의 여러 가지 것들이. 사실 나는 대책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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