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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hallomean 2022. 10. 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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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되나요, 최현우

[책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132권.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현우 시인의 데뷔 6년만의 첫 시집이다. 2010년대를 20대로 살아온 시인의 진솔한 마음의 보고서이자 청춘을 가로지른 어제의 세계를 담은 비망록이기도 하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붙잡을 수는 있었던 나날을 기록한 63편의 시편. 슬픔은 절제하되 그 무게를 견디고자 하는 책임은 무한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이 시인을 '초과-신뢰'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의연한 시인의 잊지 않으려는 기록은 "망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 싶"은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슬프고 끔찍한 일들은 꼭 내가 만든 소원 같아서 누군가 다정할 때면 도망치고 싶었다. 

망가지지 않은 것들을 주고 싶었는데, 스물의 나를 서른의 내가 닫고서 

턱까지 숨이 차서 돌아가면 당신이 늘 없었다. 

-2020년 3월, 최현우 

 

[본문 중]

<딱 한입만 더>

병든 손으로 나를 밀칠 때 그 힘이 당신의 것이었는지 병의 것이었는지 알지 못했고 할말이 생각나지 않아 가라했으니 갔다가도 능청맞게 빵을 사오며 배고프지 하고 탁상을 펼치면 몇 입을 먹다가 피보다 어두운 피를 토하는 입가를 닦아주며 피에게서 당신을 닦아낸다는 생각을 할 때쯤 먹지 못하는 당신은 잠들고 혼자 일어나 당신이 먹다 남긴 소보로빵을 먹으며 당신이 베어물었던 자리에 입을 포개고 매일 줄어드는 한입이 어떤 보폭 같아서 오랫동안 세수를 하고 쳐다본 거울 속에는 이빨이 입술 바깥에 있는 입을 가진 내가 있었고 달의 너머, 누군가 너무 뾰족한 부리를 이곳으로 집어넣고 있었고 빛도 어둠도 없어진 밤의 표면을 출렁거리며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냄새에 흘러내린 침으로 온몸이 젖고, 젖었고, 그러니까 우리 딱 한입만 더, 한입만 더 먹자고

 

[읽고,]

20대의 나는 어디가 목적지 인지도 모른채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조각배의 느낌같았다. 아무리 노를 젓고 저어도 사방은 칠흙같은 바닷물만 보여 정신이 아득해졌었지. 그땐 아무것도 못봤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그 정처없었던 항해가.힘차게 물길을 젓던 내 팔과, 조각배에 단단히 버티고 있던 내 다리가 지금 와서야 새삼 부러워짐은 왜일까. 흘러간 과거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광경은, 분명 망망대해의 바다 가운데서도 커다란 고래가 조각배 밑을 지나가는 장면, 날치떼들이 하늘을 나는 장면, 밤이면 바다에 비치던 달빛과 윤슬같은 아름다움이 분명 존재했다. 최현우 시를 읽으면서 그때를 생각한다. 그때 내 곁에 있던 아름다움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은 아마 불변하리라. 당신의 입에 내 입을 포개었던 그 날들이, 오묘했던 당신의 타액과 체취를 한입만 더 먹을 수 있다면. 한번 더 느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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