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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상처적 체질

hallomean 2022. 10. 1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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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 류근

[책 소개]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나, 이후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던 시인, 류근이 등단 18년 만에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펴냈다. 지면에서 한 번도 만나볼 수 없었기에 그의 이름은 독자들에게 낯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노래를 이미 들은 바 있다. 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은 원래 그가 쓴 시였다. 그러나 이번 시집엔 익숙한 그 노랫말은 물론이고, 그를 문단에 들어서게 한 신춘문예 당선작도 실리지 않았다. 시인은 그렇게 세상에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 70편을 담은 한 권의 시집으로 처음, 독자들을 만난다. 그러나 독자들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자신의 가슴이 익숙한 감정으로 두근거린다는 것을. 아무리 어려운 책을 읽고 심도 있는 생각을 하더라도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더욱 가슴을 치고 갔던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체질적으로 약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울컥, 마음이 흔들리는 부분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잊고 있거나 감추어둘 수는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런 것.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류근의 시에는 이처럼 익숙한 상처와 슬픔이 배어 있다. (출판사 제공)

 

[시인의 말]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2010년 4월, 감성마을 모월당에서 류근

 

[본문 중]

<반가사유>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가끔은 목욕 바구니 들고 조조영화 보러 가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 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읽고,]

나는 류근의 시를 좋아한다. 혹자는 통속적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만 그 통속이라는 말의 의미는 실로 어마어마 하다. 

나에게 류근의 통속은 나의 사랑의 이야기와, 과거가 되버린 잃어버린 기억들에 주목되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아름다운 그의 시 언어는 노랫말로 퍼져 그를 통속으로 밀어넣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콧대높음을 난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의 아름다운 시를 계속해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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