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

[영화] 끝과 시작, 세상에서 가장 조용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2023년이 끝났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보냈던 연말,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쌓인 책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 오늘이 되었고, 오늘은 2024년 1월 1일도 아닌 1월 3일. 시작 주간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한다. 끝과 시작에 대한 담대한 포부는 없다. 지나가는 나이와,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지도 않았고, 그저 담담히 조용히 보냈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조용히 시끄러웠다. 여태 끝과 시작을 알리는 루틴으로 작년까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며 5년을 보냈었다. 12월 31일, 자정을 앞두고 영화를 재생하는 루틴.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 흐르는 bgm을 들으며 비장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나를 찾는데 의미를 둔 몇 해가 지났다('나..

일기 2024.01.03

나를 두드리는 말 들

문득 어떤 말들을 들었을 때, 마음 깊게 울리는 말들이 있다. 최근의 일련의 사건 사고들로 심신이 편치 않고 고단했었다. 젊음의 피가 흩뿌려진 바닥은 그것이 시위든, 오락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제도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내 나이가 젊음을 벗어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이니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그 조차 오만임을 안다. 지나친 정류장의 공기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정류장의 공기와는 다름을. 지금 비가 내리고 있는 그 정거장에, 내 시절엔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맑은 정류장이라고 부를 수 없듯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봤다. 모든 게 신기했고, 뭐든 하고 싶었다. 사람이 있는 곳엔 나도 서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기 2022.11.08

[소풍] 순천문학관, 김승옥

순천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무진기행을 본 후론 순천이라는 지명보다, 무진이라는 지명을 더 입으로 발음하게 됐다. 무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좋아. 가을 오후에 뉘엿 저무는 해는 살랑이는 갈대를 더 운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넓게 펼쳐진 갈대밭 가운데 있는 김승옥 문학관이 있다. 아주 작고 작은 문학관이지만 나는 그의 필체를 직접 보는 것, 그 자체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무진기행을 직접 필사한 나로선, 원고에 쓰인 김승옥 선생의 필체가 너무나 감격스러웠달까. 어른 글씨, 어릴 적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면 어른 글씨를 연습장에 몇 번이고 연습해서 나 혼자 몰래 처리한 기억이 있다. 김승옥 선생의 글씨는 내가 따라 쓰던 그, 어른 글씨의 전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귀엽고, 동글지고, 부..

일기 2022.11.01

[취향] 책과 위스키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니 위스키가 서운해한다. 도통 밖을 나가지 않아서 와인보단, 책을 읽으며 위스키를 더 주로 마시고 있어서 지금 주로 즐기는 건 위스키다. 특히 요즘 날이 추워져서 위스키를 마시면 뱃속이 따듯해져 누군가 날 안아주는 기분이 든다.(두둥..알콜릭의 시작인가) 하루 끝에 마시는 한 잔의 위스키는 정말이지 내가 나에게 주는 포상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 속으로 들어와 차갑게 식은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응어리가 있는지 그걸 한 번씩 보듬어 주며 몸속을 흐르는 느낌이거든. 고단한 하루를 끝낸 후 따스한 물로 씻고 방에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아 소설을 읽거나 시를 읽거나 에세이를 읽으며 마시는 위스키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말 끝의 루틴이다. 매일 ..

일기 2022.10.24

[취향] 담소와 와인

친한 친구들과 대화하며 마시는 술을 좋아한다. 물론 술이 주는 악영향이 없지 않겠지만 술을 마시면서 상대에게 보이는 애정 어린 마음을 어떻게든 스스로 대화로,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술이 나에게 주는 가장 좋은 영향이지 않나 싶다. 너무 좋다는 말은 간지러워서 표현 하지 못하고 서운하거나 화가 나 긴장이 되어있는 상태의 감정적으로 올라오는 말들은 가시 돋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데 술을 마시면 느슨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 하는게,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서운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게, 화가 난 상태에선 미운 마음을 한 번 더 다독여 말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술과 대화가 내게 주는 좋은 영향이다. 많이도 마셨다. 와인과 페어링이 좋은 안주를 찾는 재미에 열심히..

일기 2022.10.24

[전시]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展

북 클럽을 함께하는(북 클럽 인원 나, 언니 단 둘) 언니와 가을 드라이브에 나섰다. 광주에서 광양까지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지만 언니와는 언제나 할 말이 많아서 오전 7시에 출발했다. 우리는 지금 무진으로 간다, 싶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가을 들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10시에 개장하기 때문에 오후 1시까지는 언니의 스케줄로 광주로 돌아와야 하는 빠듯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빠듯함이 있는 하루가 더 알차게 느껴진달까. 아침 일찍 나온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광양에 도착해 시간이 좀 남아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게 왠걸 언니와의 수다는 언제나 시간을 워프 하는 느낌이다. 과장을 좀 보태 커피를 한가득 들고 앉았는데..

일기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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