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29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경계에 선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를 '하루키차일드'라 자부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섭렵했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주 꾸준히 그의 글들을 내고 있고 난 이젠 그의 이름만 들어도 '취향'이란 선택 따윈 뒤로 한 채 일단 그의 글이 나오자마자 탐독하는 나를 본다. 아주 최근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벽돌같은 책의 두께는 나에게 오히려 반갑다. 아주 오래오래 그와 함께 그의 머릿속을 여행할 수 있다는 기쁨이 책의 두께와 비례하므로. 하루키의 책은 에세이까지 덮어두고 보는 편이고 난 그의 에세이보단 그의 소설에 굉장한 흥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의 소설은 언제나 경계에 선 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기 때문인듯 하다. 현실에서도 누..

읽기 2024.01.08

[소설] 청춘, 마광수

[책 소개] 청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름! ‘청춘’이라는 시절의 소중함을 되짚어 보는 마광수 교수의 소설 『청춘』. 누구에게나 딱 한 번뿐인 선물이자,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불안한 청춘 시절. 그 속을 지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성(性) 문학의 상징’으로 대표되던 마광수 교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청춘 속에 있을 때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보다 불안함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그 시절을 지난 후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인생 너머의 그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실은 우리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청춘 시절의 빛을 깨닫게 한다. 표지 사진은 젊은 시절의 마광수 교수이며, 표지의 ‘청춘’이라는 손글씨도 직접 쓰고 ..

읽기 2022.11.01

[소설] 무진기행, 김승옥

[책 소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첫 한글세대 소설가 김승옥은 근대인의 일상과 탈일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1960년대 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서울’과 ‘무진’이라는 두 공간 사이에서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냄으로써 한국 문학사상 최고의 단편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김승옥에 대하여]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고, 1945년 귀국하여 전라남도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1962년 단편 「생명 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

읽기 2022.10.23

[단상집] 우리는 사랑을 사랑해, 김종완

[책 소개] 는 김종완 작가의 단상집으로 2019년에 출간한 독립출판 서적이다. 작가는 일상 혹은 공상을 하며 떠오른 짧은 단상들을 홀수 장에만 써두었다. 짝수장엔 이 단상집을 보는 독자가 채우길 바라는 마음에 비워뒀다고 한다. 짧지만 보는 이에게 여운을 깊이 새기는 단상 글이다. 판형은 가로 90mm 세로 148mm로 작은 크기의 책이다. 포켓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기에 좋은 책. 직접 제본한 손 제본이라고 한다. 이 책의 글 꼴은 (사)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서 개발한 '문화 바탕체'로 쓰여있다. [작가의 말] 사랑을 쓸 땐 연필로 써야 해요. 사각사각 예쁜 소리가 나잖아요. 연필로 사랑, 이라고 쓰면. 사랑을 사랑하며, 사각사각 썼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긴 꿈이길 바랍니다. [읽고,] 단상..

읽기 2022.10.23

[소설] 헛간을 태우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소개] 1983년 1월 잡지 「신쵸(新潮)」에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반딧불·헛간을 태우다·그 밖의 단편에 수록되었다. (나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에 있는 24편의 단편 중 하나로 읽었다.) 작품 발표 후 몇몇 연구가가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소설 「헛간 방화(Barn Burning)」와의 영향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화제가 되었다. 하루키는 물론 포크너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부인은 했지만, 나중에 『무라카미 하루키 전작품 1979~1989③』에 실을 때는 작품 중에 등장하는 ‘포크너의 단편집을 읽고 있었다’는 부분을 ‘주간지를 세 권’으로 수정했다 작품 중에 남자가 태우는 헛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인데 작가는 불안한 현대인의 표상으로서 그를 등장..

읽기 2022.10.22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책 소개] "거두절미하고 읽게 만드는 직진성의 시였다. 노래처럼 흐를 줄 아는 시였다. 특유의 리듬감으로 춤을 추게도 하는 시였다. 도통 눈치란 걸 볼 줄 모르는 천진 속의 시였다. 근육질의 단문으로, 할 말은 다 하고 보는 시였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시였다. 시라는 고정관념을 발로 차는 시였다. 시라는 그 어떤 강박 속에 도통 웅크려본 적이 없는 시였다. 어쨌거나 읽는 이들을 환히 웃게 하는 시였다"는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 그의 시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독특한 감각의 제목을 달고 있었고, 당선 직후 문단과 평단, 출판 관계자와 새로운 시를 기다린 독자들의 입에 제법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았고, 미용고를 졸업해 미용..

읽기 2022.10.22

[시]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책 소개] 비문(非文)에서 비문(碑文)으로 비문(悲文)에서 비문(秘文)까지 몇 번을 고쳐 써서 겨우 나의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 문법에 어긋나는 비문의 형태로만 적힐 때, 그리하여 사랑하는 상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 그때의 절망과 비참을 어떤 이는 “나는 나를 생활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_김나영(문학평론가), 해설 「투명하게 얼룩진 말」에서 이현호의 시를 이야기할 때 비문을 빼고 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나를 생활했다”라거나 “나는 너를 좋아진다”(「말은 말에게 가려고」)와 같은 문장, “나는 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명화 극장」) 같은 비문들. “오래 들여다보아도 손댈 수 없는 비문만이 남을 때”(「나라는 시간」), “침묵이라는 비문(非文)과 침묵..

읽기 2022.10.22

[에세이] 인간에 대하여

[책 소개] 마광수 에세이. 이 책은 '인간'이라는 추상성과 허구성, 위선적 통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마광수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이 새로운 '인간 읽기'를 위해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서와 철학서를 두루 섭렵했으며, 원론적 고찰을 통해 자신의 논리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다. [작가의 말] 서시- 머리말을 대신하여 경복궁 경복궁 구석구석에는 얼마나 많은 정액과 애액이 묻어있을까 왕들의 음탕한 욕정은 산삼, 용봉탕, 살모사, 녹용, 해구신 등 백성의 피땀을 빨아 정성 들여 키운 정력에서 나왔겠지 어린 궁녀들의 아랫도리를 물들이고도 백성들..

읽기 2022.10.21

[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책 소개]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음담의 힘은 그 자체로도 센데, 그 음담을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참으로 투명해서 그간 김민정의 시에 나오는 음담은 야하거나 민망하다기보다 천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읽기 2022.10.20

[시] 숙녀의 기분

[책 소개]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박상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숙녀의 기분』을 펴냈다. 전작 『후르츠 캔디 버스』 이후 7년 만에 찾아온 이번 시집은 그 제목부터가 읽는 이의 마음을 잡아끈다. 먼저 ‘숙녀’. 1)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 2) 보통 여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 3) 성년이 된 여자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 그러나 굳이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밝히지 않더라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은 호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터. 그리하여 이 시집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7년 전 사탕을 빨던 아이도,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중년도 아니다. 또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

읽기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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