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클럽을 함께하는(북 클럽 인원 나, 언니 단 둘) 언니와 가을 드라이브에 나섰다.
광주에서 광양까지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지만 언니와는 언제나 할 말이 많아서 오전 7시에 출발했다.
우리는 지금 무진으로 간다, 싶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가을 들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광양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10시에 개장하기 때문에 오후 1시까지는 언니의 스케줄로 광주로 돌아와야 하는 빠듯함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빠듯함이 있는 하루가 더 알차게 느껴진달까. 아침 일찍 나온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광양에 도착해 시간이 좀 남아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게 왠걸 언니와의 수다는 언제나 시간을 워프 하는 느낌이다.
과장을 좀 보태 커피를 한가득 들고 앉았는데 순식간에 커피는 바닥이 나 있었고 미술관에 갈 시간이 돼 일어났다. (아쉬움..)
언니와 난 비비안 고닉의 책을 읽고 난 이후라 그런지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카페에서도 우리 둘은 서로 킥킥거리거나 진지하게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털고 일어나는 게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루오라니. 무려 루오라니.
미술관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싣고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루오 티켓을 들고 신난 나.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라는 표현은 전시를 모두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루오는 종교적 색채가 너무 강렬한 화가라서 (지금은 냉담자인 내가) 예술로서 받아들이기엔 조금 버거울 것이라는 선입견도 함께 들고 간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루오는 어둡고 투박한 터치, 종교화가 정도였지만 역시 나는 전시에 여러 작가들의 그림을 주르륵 늘어놓는 것보다 한 작가의 초기, 중기, 말기작을 보며 그가 쌓아놓은 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는 게 내가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그 그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이번 조르주 루오 전이 나에게 특히 더 그러했고.
내가 생각했던 루오의 화법은 이미 그가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 정착된 이후의 것이었다.
초기에 그려진 그림들은 콩테와 연필로 세밀한 부분까지도 표현하는 작가였다.
그는 핸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화가로
가구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어
10세부터 그림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공예미술학교 야간부를 다니며
스테인드글라스 업자의 수습공으로 일했다고 하는데 그의 오묘한 색채 발현은 그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종교주의는 단순하지 않았다. 다른 그림에서 보이는 예수는 성스럽고, 신과 같고,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의 이미지 보단 조르주 루오의 예수는 보다 더 아래에서 힘들고 비탄한 사람들을 예수가 대변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의 그림에서 예수는 성스럽지 않다. 그저 한 여자의 귀여운 아기로, 고달픈 노동자로, 핍박받는 소수의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가졌던 거북한 '종교'스러움에서 완전히 탈피된 것이었음엔 분명했다. 나는 언제나 한결같은 의문이 있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가, 아님 인간이 신을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 루오 전시는 내가 생각하는 종교와 인간이 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루오와 내가 같았다고 생각했다. 신도 인간도, 우리는 공생관계로 누가 누구를 떠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종교가 언제나 말하고자 하는 제1의 교리는 사랑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둘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것.
언니랑 아주 즐거웠던 가을소풍이었다.
기념사진까지 야무지게 ㅎㅎ
https://artmuseum.jeonnam.go.kr/museumofart/index.do
전남도립미술관
오전 10:00 시부터 오후 6:0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고 하니
올 가을소풍은 조르주 루오, 그림에 푹 빠져 보시길 :)
전남도립미술관
artmuseum.jeonnam.go.kr: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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