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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깊이에의 강요

hallomean 2022. 10.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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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인 「깊이에의 강요」,「승부」,「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과 에세이「문학의 건망증」등 총 네 편의 작품을 한데 묶었다. 짧은 이야기 뒤로 남겨진 긴 여백 속에서 작가의 세상을 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다. 표제작 「깊이에의 강요」는 한 젊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예리하게 그려 낸다.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어느 평론가의 무심한 말을 듣고 고뇌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 그리고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바꾸어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과 '깊이에의 강요'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그' 평론가를 대비시켜 인생의 아이러니를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3.26~ )

전 세계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거절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는 기이한 은둔자이자 언어의 연금술사.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암바흐에서 성장했고 뮌헨 대학교와 엑상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어느 예술가의 고뇌로 가득한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스>와 평생을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기묘한 인물을 그려 낸 <좀머 씨 이야기> 그리고 2천만 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향수>등으로 알려졌다. 

 

[본문 중]

<깊이에의 강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악의적 의도는 없었고 , 그녀를 북돋아 줄 생각이었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 여인은 그의 논평을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틀 후 바로 그 평론가의 비평이 신문에 실렸다. -그 젊은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젊은 여인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소묘를 들여다보고 낡은 화첩을 뒤적거렸다.(...)

 그날 저녁 그녀는 초대를 받았다. 사람들은 비평을 외우고나 있는 듯이 그림들이 첫눈에 일깨우는 호감과 많은 재능에 관해 연신 말을 꺼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들으면 귀편에서 나지막이 주고받는 소리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젊은 여인은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사실이에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 깊이가 없어요'

그다음 주 내내 그녀는 전혀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두 번쨰 주 그녀는 다시 그림을 그리려 시도했다. 그러나 어설픈 구상이 고작이었고 때로는 줄 하나 긋지 못하는 적도 있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 질렀다.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젊은 여인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읽고, ]

사람이 돌아버리는 과정을 잘 보여준 작품이지 않을까. 깊이를 강요당하는 저 젊은 예술가는 결국 죽고 나서야 깊이를 얻었다. 현대인들이 힘들어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아주 콕 집어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하는 말들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사회적 권위와 나이의 고하와 비례하며 듣는 이를 짓누른다. 무시하고 말 일이라고 넘기던 말들은 사람만 바뀌었지 돌아가면서 똑같은 말을 툭툭 던진다. 말하는 입은 여러 개. 듣는 귀는 단 두 개. 귀에서 피가 흐른다. 비혼이면 늙어서 어쩔 거냐고, 일을 쉬고 있으면 뭐 먹고 살 거냐고, 놀면 노는 대로 그렇게 놀다가 돈은 제대로 모으는 거냐고 등등 때에 따라 듣는 필요 없는 말들만 뮤트 시켜도 우리네 삶은 한결 행복해지며 더욱 건설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쉽게 내려버리는 잣대의 폭력성에 우리 모두 지치지 말길. 그리고 그 폭력적 언행을 나는 하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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