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음담의 힘은 그 자체로도 센데, 그 음담을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참으로 투명해서 그간 김민정의 시에 나오는 음담은 야하거나 민망하다기보다 천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번 시들에서 그 음담은, 그리고 이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는 듯하다. 마치 기가 죽은 것처럼 한껏 줄어든 음성은 음담을 조용히 스쳐지나 보내며 그저 나지막하게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사건을 전할 뿐이다. 주워온 돌을 빈 대야에도 넣어보고 물속에도 담가보며 그 빛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두커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 그래서 그 돌을 모르고 지낸 시간과 그 돌을 주워와 품고 지낸 시간 사이에, 텅 빈 대야와 물이 담긴 대야 사이에, 낮과 밤 사이에 빗금을 치게 만드는 것이 고작 작은 돌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또 그 돌을 어딘가에 둔 채 잊고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옮겨가며 놓아두면서 그 쓰임을 함께 고민하는 삶. 그러한 것들이 “사랑이었다”라고 시의 끄트머리에 그 품이 아주 넓은 마침표를 찍는 시인, 그것이 바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김민정이다. ‘죽은 사람 대신 내가 살고 있다’는 의식은 김민정의 시 세계 밑바닥을 흐르는 작은 주제가 아닐까. 대야에 담긴 물이 비춰야 할 것이 마땅히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얼굴을 닦는 일이란 그러므로 죽은 자의 얼굴을 잊지 않는 일, 그리하여 나의 얼굴에서 그의 얼굴을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 죽은 자는 아마도 나를 낳고 기른 부모일 수도, 혹은 내가 지켜주지 못한 모르는 누군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바로 그들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죄책감이 마치 무거운 추처럼 김민정의 시를 잡아놓고 있다, 사랑의 기쁨으로도 그렇다고 손쉬운 슬픔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도록.
[시인의 말]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세 번째이고 서른세 편의 시. / 삼은 삼삼하니까.
-2016년 6월, 김민정
[본문 중]
<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하자, 가 아니라 / 하면 할게, 라는 사람이 / 무조건 착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
사랑은 독한가보다 /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
내 위에 올라탄 네가 /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
찰싹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즉흥이다 / 그런대로 네게 뜻이 될 만큼은 / 내가 자랐다는 얘기다 /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 윗목 소쿠리에 놓여 있던 / 사과를 깎는다 / 받아먹는 너의 이맛살이 / 잔뜩 찌푸려진다 / 물러 /
무르면 지는 거라는데 말이지 / 언젠가 자다 깼을 때 / 등에 배긴 그 물컹이 / 갓 낳은 새끼 강아지였다며 / 너는 이제 와 소용없는 일을 /
오늘의 근심처럼 말한다 / 쓸데없다 / 비는 요통처럼 절구 찧는데
[읽고, ]
고전문학을 읽다 보면 불편한 지점이 꼭 있었다.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남성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그들 시선의 사랑이야기, 성행위 묘사들은 너무나 남성 중심적 이야기였으니까. 시대가 변하고 변한 시대에 사는 나는 예전의 그것들이 굉장히 불편해졌다. 사실 그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나날도 있다. 백마 탄 왕자님이 나를 구하러 올 거라고, 그를 위해 아이를 낳고 일하고 돌아온 그에게 따스한 저녁을 만들고 우락부락한 그의 손에 이리 젖혀지고 저리 젖혀지는 것들이 앞으로의 내 사랑의 끝이고 쾌락의 끝이고 행복의 끝이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더랬다. 아마도 무수히 읽혀오고 봐 왔던 남성 중심적 시각에 뇌가 절여져서일 거라고 생각이 든다. 요즘은 책 읽기가 신이 난다. 다른 쾌락을 알게 된 기분과 같은 기분이랄까. 김민정의 시를 읽을 때도 그런 지점이다. 간지러웠던 부분을 시원히 긁는 느낌.
김민정 시의 <밤에 뜨는 여인>들의 부분 중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 / 가족은 탄생 할 수 없다 (...)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 / 사랑은 탄생 할 수 없다 (...)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 / 이해는 탄생할 수 없다 , 란 시문이 있다. 여기서 나는 무릎을 치게 된다. 여자의 문란함을 손가락질받던 시대가 끝이 났음을 알아야 한다. 문란함은 사랑이다. 문란함으로 시작된 사랑은 가족을 탄생시킬 수 있고, 그 사랑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 모두는 남자건, 여자건 문란해야 함이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으니. 김민정의 음담은 그 자체로 사랑이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마지막 시문은 문란함을, 음담을 고귀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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