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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hallomean 2022. 10. 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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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유계영

[책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119권. 2010년 등단 이래 깊고도 낯선 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 유계영. 첫 시집 <온갖 것들의 낮>(민음사, 2015)과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 포함된 시집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2018)에 이어 세 번째 시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를 펴냈다. 첫 시집에서 우리가 만났던 "스타카토풍의 불안과 공포를,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는 건조한 밤을, 입체파 회화처럼 단절되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몸과 얼굴"(이장욱)에 더해 시인 유계영의 더 깊숙한 곳이 침착히 꺼내 보인 시집이다.

 

[시인의 말]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말을 쓰다가 완성해 버린 것이다. 하고 싶은 말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단어가 바닥나 버렸다.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2019년 4월, 유계영 

 

[본문 중]

123p. 웃는 돌

만약 언젠가

돌 하나가 너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알리러 가겠니? 

-외젠 기유빅 <만약 언젠가>

먹는 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로 대단한, 돌도 씹어먹을 나이지 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또다른 사람들은 실로 범상한, 돌도 씹어먹을 나이지 하고 심드렁해합니다 나는 으적으적 씹으며

생각합니다 사람을 녹이면 무슨 색깔일까요 염소를 고아 먹고 더 많은 염소를 위해 쓰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찰랑 거리는 나의 뿔 속에 부유물이 많은데요 손이 쥐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너 모자 크니까 빌려줘

너 손이 크니까 잡아줘

그런 이야기들이 다정합니다 더 많은 것을 먹고 더욱 많은 것을 위하려는 것 같았어요

둘밖에 없었지만 저요? 제 손요? 자꾸 한번 더 묻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두 번씩 우는 나를 대단한 염소야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한번 더 묻는 나를 말귀도 어두운 멍청이 같으니라구 하고 걷어찹니다 나는 마른 잔디를 으적으적 씹으며 

별 뜻 없어요 습관이에요 부끄러워합니다

같이 바다에 갈까? 약속하면 바다로 향하는 도중에 깨어납니다

내일도 바다로 향하는 도중에 깨어나 첨벙거리며 혼자서 두 번씩 첨벙첨벙하면서

해변의 커다란 바위를 향해 뿔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쩌다 부끄러운 습관밖에 남질 않았고

먹는 내가 있습니다 커다란 바위 하나는 다 먹을 겁니다 

찬사와 야유를 퍼붓던 사람들 모두 나의 건강을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돌이라니 어쩌자고 그런 것을 먹으려는 거야? 죽으려는 거야? 하고 울고 있습니다 사람을 녹이면 무슨 색깔일까요

생각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래된 돌의 기억이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부유물이 많고 투명합니다

돌을 씹어먹는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해변에 남기로 합니다 

누군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면

저요? 저 말이에요? 혼자 열심히 쪼개지면서요 

 

[읽고,]

첨부한 시 <웃는 돌>은 개인적으로 시집 안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아니다. 하지만 유계영 시인이 '시인의 말을 쓰려다 완성한 시'라는 부분에서 의미가 크게 다가와 선정했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두렵게 하고,  또는 노력하게 한다. 그리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나의 좋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타인에게, 저요? 제 말인가요? 두세 번 되묻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같은 면을 보고 나를 힐난하는 사람들의 말엔 상처를 받곤 하지만 그건 또 으적으적 씹어 삼켜버려야 내 삶이 유지가 된다. 일희일비. 계속해서 일어나는 삶의 패턴이다. 나를 녹이면 어떤 색깔일까. 시인의 말은  나를 궁금증에 빠뜨린다. 나의 엑기스는 어떤 맛일지, 나를 녹이면 어떤 색일지,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사람에게, 나 역시 웃으며 두 번을  묻게 될 것이다. 저요? 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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