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비비언 고닉은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미국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면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자주 비견된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의 대표작 <사나운 애착>(1987)은 '뉴욕타임즈'에서 지난 반세기, 미국 최고의 회고록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21년 윈덤 캠벨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주로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와 칼럼, 문학비평 등을 써온 그는, 특히 자기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타인을 깊이 통찰하는 '고닉표 회고록'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민 가정의 여성으로 자난 고닉은 특유의 거침 없는 솔직함과 시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술회한다.
그의 문체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오가는 드라마틱한 눈빛과 표정, 숨막히는 찰나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데, 단순 설명을 넘어 각 인물의 목소리와 억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화체를 주로 사용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고닉이 체현하는 그 숨막히는 거리감에서 '나와 타인'이 비로소 '우리'로서 기능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책은 7개의 에세이를 담았다. 표제작이자, 가장 첫 장인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뉴욕의 구석구석이 배경이다. 고닉이 거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곳에서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거리는 무대이고,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은 고닉을 포함하여 주인공이 된다. 고닉은 마주친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마주친 낯선 이에게서 유명인이나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추억하고, 시끄러운 소란과 고성이 오가는 곳에 멈춰서서는 고성의 이야기들이 자신의 목소리와 닮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다 보면 거리에는 우연이 아닌 보이지 않는 관계가 얽히고 섥혀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독자는 그녀의 통찰력과 주변을 주시하는 시선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
-7월의 어느 날 오후, 두 남자가 38번가의 한 건물에 기대 서 있었다. 둘 다 대머리에 입에는 시가를 물고, 목줄을 맨 작은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있었다. 요란한 소음과 열기, 먼지, 혼란 속에서 두 마리의 개는 쉬지 않고 짖어댔다. 두 남자 모두 험상 궂은 표정으로 자기 반려동물을 쳐다보았다. "왈왈, 그만 좀 짖지 못해?" 한 남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왈왈, 그래 계속 짖어라." 다른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본 두 남자가 씩 웃었다. 그들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번졌다. 그들은 공연을 했고, 나는 그 공연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혼돈 속에서 그냥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를 그 주고 받음에 내 웃음이 형태를 부여해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34번가와 2번로가 교차하는 길 한복판에서 차량 두 대가 충돌할 뻔 했다. 두 대 모두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멈춰 섰고, 차 문은 열려 있으며, 두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곧바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경찰 한 명이 걸어온다. 두 운전자 모두 그를 향해 소리친다. "저기요, 저 사람이 뭔 짓들 했는지 보셨어요? 저 사람이 뭔 짓을 했는지 보셨냐고요?" 경찰이 두 남자의 팔에 양손을 하나씩 올리고는 말한다.
"자, 이제 법을 집행할 건데요. 그쪽은," 그가 한 남자에게 고갯짓을 하고 동쪽을 가리킨다. "차에 가서 타시고요. 그쪽은" 그가 다른 남자에게 고갯짓을 하고 서쪽을 가리킨다. "당신 차에 가서 타세요. 그리고 두 분 다, 빨랑들 여기서 꺼지세요." 모여 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리고, 그 얼굴과 몸짓이 눈앞에 떠올라 나는 혼자 웃는다. 나는 여기에 대화를, 저기에 해석을, 또 그다음 어딘가에는 논평을 덧붙이며 그 장면들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내가 시간을 뒤로 돌리며 나와 마주치기 전의 그들을 상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는 흠칫 놀라, 내가 하루의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막 나를 지나간 시간에 형태와 질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이 이제 나와 함께 방 안에 있다. 그들은 친구가, 거대한 친구들의 집단이 되었다. 오늘 밤 나는 내가 아는 다른 누군가각 아니라 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들은 내게 서사적인 충동을 되돌려준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내 삶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일깨워 준다. 내겐 그들이 필요하다.
[서평]
고닉의 글은 그녀가 사는 주변의 환경을 예민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좇아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내가 특히 좋았던 점은 그녀가 사는 뉴욕의 전경을 눈으로 보는 기분. 영화에서 보던 것 처럼 마냥 활기차고 멋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며, 세련된 가게들이 즐비한 뉴욕이 아니라 뉴요커가 살아가는 도시로서의 뉴욕에 실제 나 자신이 걷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멀어지면서도 기꺼이 낯선 이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과의 커넥션을 이어보려고 한 그녀의 노력과 변화를 담담히 써내려 간다. 시선에서 시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지루 할 틈이 없이 영화처럼 다음 장면으로 흐른다. 혼자라서 외롭지만 아무도 모르는 대중 사이에 끼어있음으로 인해 그 자체로도 위안이 되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모든 현대인이 가진 고독의 양면이 아닐까 생각 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더 짙게 공감할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동안 이응노화가의 '군상'이 자꾸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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