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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책 소개] 한국 시단에 있어 허수경 시인이 차지한 그 자리가 어떠한지 잠시 생각해본다. 시인만의 고유한 울림이 있는 자리다. 시인만의 고유한 언어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자리다. 시인은 여자가 아닌 여성의 목소리로, 목청껏 지르고 싶었으나 도저히 삼킬 수밖에 없었던 세상사의 많은 슬픔과 비애들을 다양한 음역을 가진 시로 표출을 해주곤 했다. 시인 스스로 일찌감치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라고. 이번 시집에는 총 54편의 시가 실렸다. 고고학적인 세계와 국제적 시야를 바탕으로 그사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사유는 더욱 깊고 더욱 넓어졌으며 더욱 간절해졌다. 그 간절함의 대상은 우리가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쉽고 단순하며 가벼운 것이 아니다. 무한이다. 우..

읽기 2022.10.08

[시]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책 소개] 오은은 첫 시집 로 "한국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스스로 생장한 언어의 힘으로 새로운 시적 규율을 만들어가는 시인",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를 의심하고 질문하게 한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시의 또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한 그가 4년 만에 58편의 시를 썼다. 바로, . 이에 시인 김언은 '어떤 다어도 고독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단어 하나도 예사로 넘기지 않는 그 손길이 앞으로 어떤 단어를 더 건드리고 사랑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단어는 많고 단어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한한 시간을 가장 무한하게 보내는 방식으로 누군가는 다시 고독하게 단어를 건드릴 것이다. 그보다 더 지독하게 발생하는 말 사..

읽기 2022.10.07

[시]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책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119권. 2010년 등단 이래 깊고도 낯선 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 유계영. 첫 시집 (민음사, 2015)과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 포함된 시집 (2018)에 이어 세 번째 시집 를 펴냈다. 첫 시집에서 우리가 만났던 "스타카토풍의 불안과 공포를,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는 건조한 밤을, 입체파 회화처럼 단절되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몸과 얼굴"(이장욱)에 더해 시인 유계영의 더 깊숙한 곳이 침착히 꺼내 보인 시집이다. [시인의 말]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말을 쓰다가 완성해 버린 것이다. 하고 싶은 말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단어가 바닥나 버렸다.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2019년 4월, 유계영 [본문 중] 123p. 웃는 돌 만약 언젠가 돌 하나가 너에게..

읽기 2022.10.07

[시]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책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132권.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현우 시인의 데뷔 6년만의 첫 시집이다. 2010년대를 20대로 살아온 시인의 진솔한 마음의 보고서이자 청춘을 가로지른 어제의 세계를 담은 비망록이기도 하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붙잡을 수는 있었던 나날을 기록한 63편의 시편. 슬픔은 절제하되 그 무게를 견디고자 하는 책임은 무한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는 이 시인을 '초과-신뢰'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이 의연한 시인의 잊지 않으려는 기록은 "망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 싶"은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슬프고 끔찍한 일들은 꼭 내가 만든 소원 같아서 누군가 다정할 때면 도망치고 싶었다. 망가지지 않은 것들을 주고 싶었는데, 스물의 나를 서른의..

읽기 2022.10.06

[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책 소개] 문학동네시인서 116권.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장석주 시인의 시집이다. 등단 40주년이 넘은 시인은 전방위 글쓰기의 그 선봉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뜨겁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일궈낸 다양한 저작들 가운데 그럼에도 수줍은 듯 그런 만큼 늘 새로운 듯 작심 끝에 꺼내 보이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건 '시'라는 장르에서의 시심이다. 그간 십여 권의 시집을 펴냈으나 유독 이번 시집에서 '청년'다움에 빠져드는 이유는 시를 향한 그만의 초심이 다시금 발휘되어서 이기도 할 테다. 총 4부에 나뉘어 담긴 이번 시집의 주제를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인데 그의 이즈음의 사랑이란 곧 죽음과 그 궤를 한데 하고 있기에 그 큼이 참으로 지극히 넓고도 깊음을 알게 한다. 세상에..

읽기 2022.10.06

[소설] 믿음에 대하여

[책 소개] 책 는 어느새 사회 초년생이 된 이들이 직장에서 분투하는 눈물겨운 모습을, 그리고 삶의 동반자와 안정적인 관계 지속을 꿈꾸는 삼십대 생활상을 보여준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거두어야 하는, 일과 사랑을 모두 손에 쥐고 싶지만 그중 하나도 제대로 이루기 어려운 삼십대의 고충을 특유의 생생한 입담으로 전하는 이번 작품은 박상영 '사랑3부작'의 최종장이자 새로운 페이즈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네 편의 수록작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유례없이 세상을 휩쓸었던 2021년과 2022년에 쓰였다. 팬데믹 속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로 인한 고립감, 그 안에서 더욱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이야기 속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사회의 병폐를 직시하는 시선이 한층 날카롭게 그려진 는..

읽기 2022.10.05

[에세이]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책 소개] 비비언 고닉은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미국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면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자주 비견된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의 대표작 (1987)은 '뉴욕타임즈'에서 지난 반세기, 미국 최고의 회고록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21년 윈덤 캠벨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주로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와 칼럼, 문학비평 등을 써온 그는, 특히 자기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타인을 깊이 통찰하는 '고닉표 회고록'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민 가정의 여성으로 자난 고닉은 특유의 거침 없는 솔직함과 시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술회한다. 그의 문체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오가는 드라마틱한 눈빛과 표정, 숨막히는 찰나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데, 단순 설명을 넘어 각 인물..

읽기 2022.10.05

[시] 사랑하고도 불행한

[책 소개] 달콤하고 솔직한 에피소드로 많은 사랑을 받는 독립출판 대표 사랑 시인 김은비의 다섯 번째 시집. 그녀가 1930년대 자유연애에 매료되어 을 펴냈다. "지금 세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사는 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잖아요. 제가 사랑에 대한 가치가 높은 사람이라 1930년대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이 시집에서는 사랑의 가치가 최우선이었던 자유연애 시절을 현대를 사는 김은비의 감성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주위 시선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의 화두를 던지는 시인의 낭만적 사랑의 관념이 시집 곳곳에 묻어있다. 이번 시집은 [사랑하고도 불행한], [자유연애]라는 큰 제목만 존재한다. 영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고도 불행하지만, 계속해서 사랑을 추구하면 충만해진다는 작가의 용감한..

읽기 2022.10.05

[소설]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책소개] "단 하나의 사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는 알고 싶었다" 사랑으로부터 소외된 사랑을 찾아서 김소연 시인의 산문 가 '문지 에크리'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래 김소연은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가는 동시에 등 섬세한 관찰력과 시적 감수성을 담은 산문을 꾸준히 집필해왔다. 최근에는 오롯이 '나'의 개인적 경험과 사유를 녹여낸 로 삶의 소소한 기척과 소중함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한 작가가 이버에는 자신이 아닌 외부로 시선을 돌려 '사랑'이라는 타자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김소연은 사랑을 한다는 것이 사랑을 소비하고 즐기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세계에서 사랑을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즉 '사랑함'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사랑을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그것의 유동성과 다양성..

읽기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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